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박열 영화정보, 불령사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앞장선 조선 청년

by read_insure 2023. 2. 8.
반응형

1. 영화정보

제목 : 박열

개봉 : 2017.06.28

장르 : 드라마 (한국, 12세 관람가)

감독 : 이준익

출연 : 이제훈, 최희서

러닝타임 : 129분

 

2. 등장인물

박열(이제훈) : 

22세의 박열은 일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인력거꾼으로 일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항일의 뜻을 품은 청년들과 활동하는 불령사를 조직합니다. 

일본 황태자를 폭탄으로 죽이겠다는 계획을 하고 폭탄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었으니 폭탄 제조가 어려웠고 의열단을 통해 폭탄을 들여오려고도 합니다. 

 

후미코(박희서) :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무척 활달하고 개방적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당찬 모습을 보입니다.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박열을 좋아하게 됩니다. 같은 뜻을 가진 박열과 후미코는 동거서약을 맺고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아갑니다.

 

3. 줄거리

1923년 9월, 규모 7.9의 엄청난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바로 관동 대지진이었습니다. 일본은 초토화되고 사망자만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혼란에 빠진 일본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이 혼란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탔다고 거짓 발표를 합니다.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한 비열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성한 일본인들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지진이 발생하고 단 3일 만에 살해당한 조선인 수만 6000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학살 사건의 혼란을 막기 위해 모든 죄를 덮어 씌울 한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폭탄 테러 계획을 세웠던 박열을 테러범으로 만들려고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챈 박열은 혼자 모든 것을 덮어쓰려고 합니다. 

여유만만한 그는 심문 과정에서 오히려 주도권을 쥐고 예심판사를 취조하듯 나이를 묻기도 하는데 당당한 모습이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합니다. 

이게 실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박열의 태도는 위풍당당하게 나아갑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일본 법정도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게 됩니다. 

혼자 모든 것을 덮어쓸 마음을 먹고 있던 박열은 심문과정에서 박열은 황태자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하고 대역죄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후미코도 박열과 함께 했고 둘은 사형까지 받아들이며 일본과 맞서게 됩니다.

이에 진행되는 재판에서 박열은 재판받기 전 일본 법원에 요청을 합니다.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할 것, 나의 처지를 알릴 선언문을 낭독하게 할 것. 조선말을 쓰겠으니 통역관을 세울 것, 앉을자리의 높이를 재판관의 자리와 같게 할 것"

드디어 재판날, 박열은 조선의 관복을 입고 당당하게 등장하고 재판장이 묻는 질문에서도 반말을 하고 조선말로 답변을 하며 대역죄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조선을 위해 당당하게 행동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후미코와 함께였기에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었습니다. 

 

4. 후기

부당함에 거침없이 맞서는 독립투사였던 그는 이제껏 보아왔던 독립운동가와는 너무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에 계신 어머니에게 후미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교도소 수감 중에 의복을 갖춰 입고 부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사진기 보급도 보편적이지 않은 시대에 대역죄인의 신분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서두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기록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고증을 한 영화였습니다. 

일본 재판관에 끊임없이 밉보인 '박열'과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했지만 이후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옥살이를 시작하게 되는데,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는 옥살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23세라는 나이로 의문사하게 됩니다. 죽음에 이른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본인임에도 불과하고 조선이과 결혼하고 조선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암살을 당하거나 무언의 압박으로 스스로 삶을 끊은 게 아닌가 추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열'은 22년 2개월이라는 옥살이를 한 끝에 해방 후인 1945년 10월 27일이 되어서야 석박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응형

댓글